
섬진강(蟾津江)은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212km를 흘러 남해로 빠져나갑니다. 하류로 갈수록 강폭은 넓어지고 양쪽 산은 더 가까워지며, 어느 순간 차창 밖 풍경은 드라마 세트장처럼 변합니다. 고속도로도 없고, 고층 건물도 없고, 그저 강변 도로와 오래된 사찰,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차밭만이 펼쳐집니다.
이 드라이브는 구례(求禮)에서 시작해 19번 국도를 따라 화개면(花開面)을 지나 하동(河東)까지 이어집니다. 서울에서 당일치기도 가능하지만, 하동에서 1박을 하면 훨씬 여유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경부고속도로(1번)로 남쪽으로 달리다 논산 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25번)로 갈아타세요. 광주를 지나 구례 나들목(IC)에서 나온 후 17번 국도를 따라 구례 읍내로 진입합니다. 총 거리는 약 380km, 보통 교통량 기준으로 3시간 30분~4시간 소요됩니다.

화개장터(花開場)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전통 시장입니다. 4월 벚꽃 시즌에는 인산인해지만 6~7월에는 한결 조용해 진짜 시장 분위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꼭 먹어야 할 것은 재첩국입니다. 섬진강에서 잡은 민물 조개(재첩)로 끓인 맑은 국물로, 현지에서는 아침 식사로 즐겨 먹습니다. 한 그릇에 8,000~10,000원 수준이며, 국물이 깔끔하고 숙취 해소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화개장터에서 5km쯤 계곡 안으로 들어가면 쌍계사(雙磎寺)가 나옵니다. 722년(신라 성덕왕 21년) 창건된 사찰로, 계곡 안에 자리해 여름에도 시원한 편입니다. 주차장에서 경내까지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는데, 양쪽으로 오래된 느티나무와 돌담이 이어져 산책 자체가 힐링입니다.
쌍계사는 한국 차 역사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828년(흥덕왕 3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대렴(大廉) 스님이 차 씨앗을 가져와 이 일대에 심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절 주변 산비탈에 그 후손 야생차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보성의 다원(茶園)이 관리된 차밭이라면, 하동의 차는 야생(野生)입니다. 화개로(화개면 주요 도로) 양쪽 산비탈에 울타리도 없이 차나무들이 퍼져 자라는데, 이 나무들은 대렴 스님이 가져온 씨앗의 후손으로 1,200년 넘게 이어져 온 것들입니다.
길을 달리다 "야생차" 또는 "전통 녹차" 간판이 보이는 농가에 들러 보세요. 대부분 예약 없이 방문해도 차를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6월은 세작(細雀) 시기로 가장 여린 잎을 따는 시즌 — 등급 높은 야생차를 직접 살 수 있는 최적기입니다. 가격은 소포장 기준 12,000~25,000원.

재첩(Jaecheok)은 섬진강에서 잡히는 민물 조개로, 이 지역 식당들이 공통으로 내놓는 대표 식재료입니다. 재첩국은 재첩을 통째로 넣어 끓인 맑은 국으로, 강변 식당에서 아침 8시부터 팔기 시작합니다. 강가 나무 식탁에 앉아 재첩국에 밥 한 공기 먹는 경험은 어떤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는 섬진강만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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